
컨텐츠-910번 빌딩 컨텐츠
빌딩 확인일 24.06.22
825-1에서 ~ 747-23까지 빌딩 콘텐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수익용 #역세권 #재테크용
강남개발의 역사
강남 개발이 처음 시도된 것은 1963년이었다. 이때부터 강남은 강북의 과밀한 인구를 분산 시킬 장소로 검토되었지만, 행정적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것에 그쳤을 뿐,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이후 1968년 1월 21일 북한에서 김신조 등 무장 공비가 내려오면서 안보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북한의 도발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한강 이남지역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로써 강남 개발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본격적인 강남개발 이전에 강변을 정비하는 작업을 1968년부터 시작하여 여의도를 정비하고 강변도로를 건설하였다.
현재의 강남 개발은 1970년 11월 양택식 서울시장이 발표한 남서울 개발계획에 의해 그 윤곽이 잡혔다. 남서울 개발계획은 영동지역에 60만 명이 거주할 신시가지를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효과적인 인구 유치를 위해 한국전력 등 당시 국영기업을 입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정부의 종합청사 일부를 강남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새 청사를 짓고 근무인원을 수용할 주택용지를 확보하였다.
학교 시설도 대거 이동하였는데, 강북의 유수한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서울교육대학 등이 이전하였다. 고등학교의 이전은 영동지역 개발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부모들은 우수한 고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사회 제반 시설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강남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이른바 8학군의 탄생이었다.
강남의 인구가 늘면서 강남과 강북 간 교통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는 지하철과 다리 건설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방사형으로 계획되어 있던 지하철 건설을 강남개발을 위해 이례적으로 순환 노선으로 변경하여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었고,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27개의 교량이 건설되면서 영동지구는 서울의 ‘신천지’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해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정책적으로 강남에 고속터미널을 건설함으로써 강남은 전국의 각 지방을 아우르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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